문득 파를 키우고 싶어졌다. 생활비를 줄여보겠다고 이것저것 요리를 하다보니 의외로 거의 모든 요리에 파가 들어갔고, 냉동실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던 파들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파뿌리를 어디서 구할까..싶어 고민하던 차에 친정에 갔는데 마침 친정엄마가 파를 더 키우고 싶어서 파뿌리를 교회에서 가져오셨다는게 아닌가. 기회다.
"엄마 나 파를 키워보고싶은데 나 주면 안돼?"
친정은 사랑이지. 엄마는 선뜻 파 뿌리 네개를 전부다 주셨고 파는 아무 흙에나 꽂아도 잘 큰다고 하시면서 겨울이니 물은 너무 많이 안줘도 된다고 하셨다. 룰루랄라 파뿌리를 가져온 나는 남편에게 다이소에서 상토 한봉 사달라고 부탁한후 그날 바로 꽂아버렸다.
나의 반데라들(라벤다)이 집안에 들어온 이후로 지극정성 만들었던 스치로폼집에 안착한 나의 파들. (2023.12.25.)다른 스치로폼&뽁뽁이 집에는 다육이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있다. 파를 심고나서는 한동안 날이 따뜻해서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겨울은 겨울인지라 따뜻한 날보다 추운날이 더 많았고, 그 중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날도 있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나 - 엄마, 파들이 얼을것 같아
엄마 - 밤에만 방안에 들여놔
나 - (딴얘기)
더이상 집에 식물을 들일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자리도 없었다. 아니 핑계다. 사실 아직 틔운위에는 절반정도의 자리가 있지만 파에게 내어줄 자리는 없었다. 미안하다 파. 그래서 이 녀석들의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나 식집사본능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는지 영하로 떨어지는 날에는 나가서 스치로폼 뚜껑으로 위를 덮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약 일주일이 지난 시점.(2024.1.2.) 드디어 파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와! 진짜 자라네 자라. 이 추위에 베란다에서. 그런데 다이소 상토가 질이 안좋아서 그런지 물이 너무 슝슝빠져서 파 뿌리 부분이 마른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아예 상토를 들이부어 더 채워주었다. 그럼에도 자꾸 흙이 꺼져서 또 다시 녀석들의 운명에 맡겨보기로 했다.
얼마전 그로로에서 어떤 메이커님이 쪽파를 키워서 파김치를 해먹은 이야기를 쓰신 글을 읽었는데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쑥쑥 잘 크는것 같아 보였는데 나의 파들은 왜이렇게 느릴까. 역시 추위에 장사인 식물은 없는걸까. 아니야, 그래도 너무 상심하지 말자. 자라고 있으니까. 파는 되레 너무 따뜻하면 안자란다고 그랬어.
그리고 오늘. 다시 약 일주일만에 나가보니 ..
와..순식간에 이렇게 자랐네? 식집사의 상심을 눈치라도 챈거야? 색도 이제 제법 파같다? ㅋㅋㅋㅋㅋㅋㅋ아 이녀석들 이렇게 반전매력으로 갬동아닌 갬동을 주다니. 우리 반데라(라벤다)랑 블루필라, 라필라 주려고 사온 거름이라도 뿌려줘야겠어. ㅋㅋㅋㅋ 아니면 다이소표 영양제라도 꽂아줄까.
식집사를 오래도록 하려면 사소한거에 너무 희노애락하지 말아야하는데 극대문자F인 나는 오늘도 흥분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으하하하하하하. 오늘도 너무 추워서 스치로폼 뚜껑 덮어주고 왔는데, 역시나 느끼지만 스치로폼+뽁뽁이의 조합은 정말 대단하다. 연약하고 갸날픈(우리 반데라를 보면 좀 아닌것 같긴 하지만..)꽃들이 버티기에는 한없이 모자라지만 살짝 서늘해도 견딜 수 있는 정말 강추하고 싶은 조합! 스치로폼뽁뽁이집!
음, 우리 블루필라, 라필라들 분갈이 할 때 쯤, 혹은 반데라가 꽃을 피울때쯤에는 수확해서 요리에 쓸 수 있길 소망해본다. 아마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중에 가장 쉬울것 같은 파를 이제야 키워보면서 너무 호들갑 떨어서 민망하지만 한 겨울에 베란다에서 자라는 파의 생명력은 꽤나 인상적이다.
더 쑥쑥 자라서 나의 귀한 식량이 되어주렴. 히히.
파초청녀
커피를 사랑하고, 환경지키는것에 관심이 많으며,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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