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자식들이 장성해서 각자 살기 바쁘다지만 어릴 때를 생각해봐도 우리가족은 여기저기 놀러다니는 편은 아니었다. 살림이 바쁘셨는지, 그냥 가족 전체가 집순이집돌이였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에는 딸과 엄마의 우정으로 함께 일본 오사카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왔지만 여전히 가족 전체가 함께 해외여행을 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아빠는 자의로 거부하셨다. 아빠를 왕따시킨 게 아니라 아빠가 우리랑 안 놀아준다.)
그런데 이번에 웬일인지 부모님과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이 성사되었다. 비행기표를 끊은 게 엊그제 같은데 열심히 현생에 치이며 표값을 벌다보니 출국일이 다음주로 다가왔다.
자유여행을 계획하며 자연스레 가이드 역할은 내게 주어졌다. 일거리를 줄이려고 호적 메이트에게도 동참을 권했지만 휴가를 뺄 수 없다며 거절당했다.(진짜일까?) 국내도 아니고 해외다보니 첫 가족투어를 무사히 끝내야 된다는 임무가 막중했다.
경비를 제외하고 이 여행을 완벽하게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향신료를 잘 못 드시는 아빠를 위해 너무 로컬느낌이 나는 현지식당은 빼고, 무릎이 아픈 엄마를 위해 계단보다는 케이블카. 망고를 사랑하는 나를 위해 망고 디저트 가게는 필수.
그 나라 날씨에 맞는 옷차림 체크, 이동을 배 시간 체크, 틈틈이 환율 확인해서 쌀 때 환전해놓기. 이쯤되니까 알았다. 우리가족이 왜 어릴 때도 여행을 안 다녔는지. 다 큰 어른 셋이 가기에도 신경쓸 게 많은데 어디로 튀고 언제 사라질 지 모르는 애들과 함께라면.. 미래의 내 아들아 딸아 미안하다, 엄마는 자신이 없구나.
가끔 내가 정말 다 컸구나 느끼는 순간이 있다. 가령 이번에 남자친구를 부모님께 소개시킨 일이라거나, 내가 시술결과를 듣기 위해 엄마 병원에 따라갔을 때도 그렇다. 며칠을 떼를 써서 인생 첫 휴대폰을 손에 넣은 기쁨이 생생한데 언제 내폰내산은 당연하고, 부모님 폰을 알아보고 있는 시간이 되어버린걸까.
걱정도 미리 사서 하는 타입인 나는 정신없이 살다가 눈 뜨면 부모님과 나의 보호자 자리가 바뀌어있는 상상까지 넘어가버린다. 그러다보면 괜히 울적해져서 거실에 있는 부모님 옆에 가서 장난을 치고 실없는 소리를 한다. 아직 이렇게나 철없는 딸이니까 아직 오래오래 엄마아빠가 보호자를 해야한다고, 아무도 모르는 티를 내는 것이다.
오늘부터 세 가족의 여행이 시작된다. 사이좋던 가족도 여행가서 싸우는 경우가 참 많다던데 부디 평화롭게 여행을 마칠 수 있길 기도하며 부모님과 여행가기 전 금지 10계명을 함께 읽어야겠다.
바라는대로, 행복한 가족의 페이지가 되길.
피어나는교실
나의 교실이, 나의 집이, 나의 삶이 피어나길 바라며 써내려가는 기록들 탄생화를 주제로 에세이와 수필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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