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측백나무 씨앗에서 싹이 났어요!
빨간머리앤24. 01. 22 · 읽음 578

시골집엔 텃밭이 꽤 큼직하게 있었다. 가장자리를 빙 둘러 측백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아마도 울타리를 겸해서 아버지께서 심으신 모양이다. 밭일을 하는 아버지에게 물을 가져다 드리고, 식사 하시라고 모시러 갈 때면 으레 보았던 측백나무. 다 자란 지금 나는 측백나무에서 진한 향수를 느낀다. 

 실내의 멋을 한층 돋구는 올리브나무, 몬스테라, 고무나무도 좋지만, 내 맘엔 측백나무가  최고다. 측백나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치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세상을 향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꿈꾸었던가. 그 꿈을 다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기 전에 꿈에 취해 마냥 좋아하던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년에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초등학교가 눈에 들어와 옛 기억을 더듬어가며 교정에 들어섰다. 큰 화분에 다양한 식물들이 자리고 있었는데, 황금측백나무도 있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힐링 그 자체였다.  

 

 마침  열매가 여물어 살짝 벌려지는 시기라서 씨앗을 구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마치 보석을 담듯 몇 알을 주머니에 넣고 돌아오면서 무척 신이 났다. 정말 이 씨앗을 심으면 나무로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측백나무가 씨앗이 아닌 뿌리로  번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될까,  안 될지도 몰라. 그런 양 갈래의 마음이  나를 더욱 흥분시켰다. 확신하지 못하는 일에 이토록 재미를 느낄 수 있다니, 난 그날 처음 알았다.

 

집에 돌아와서  주머니를 탈탈 털었다. 한 톨의 씨앗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봄에 파종을 해야 한다고 했다. 호기심때문에 봄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봄에 심을 씨앗을 남겨두고 11월이라해도 용감하게 심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3주도 지나지 않아서 싹이 났다. 신기하기만 해서 가족들을 불러 세워놓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수확도 아닌 파종에  이리도 기뻐할 수 있다니, 행복할 수 있다니, 내게 이런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니!. 모든 것에 감사하기만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됐다. 내 이기적인 욕심에 일찍 세상에 구경한 새싹이 겨울 추위에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쨍 하고 깨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 이렇게 자란 걸  보면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다.  

 

 

 

아직  내겐 파종할 씨앗이 남아 있다.  날이 좀 더 풀리면 남은 씨앗을 심을 것이다. 그리고 잘 키워서 우리 가족의 울타리를 삼아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왼쪽은 씨앗                                     오른쪽은 열매 껍질

 

 

 

 

8
빨간머리앤
팔로워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는 내일이 있어 행복한 빨간머리앤, 앞으로 정원형책방 글쓰기 카페를 운영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댓글 8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전체 스토리

    이런 글은 어떠세요? 👀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