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엔 텃밭이 꽤 큼직하게 있었다. 가장자리를 빙 둘러 측백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아마도 울타리를 겸해서 아버지께서 심으신 모양이다. 밭일을 하는 아버지에게 물을 가져다 드리고, 식사 하시라고 모시러 갈 때면 으레 보았던 측백나무. 다 자란 지금 나는 측백나무에서 진한 향수를 느낀다.
실내의 멋을 한층 돋구는 올리브나무, 몬스테라, 고무나무도 좋지만, 내 맘엔 측백나무가 최고다. 측백나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치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세상을 향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꿈꾸었던가. 그 꿈을 다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기 전에 꿈에 취해 마냥 좋아하던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년에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초등학교가 눈에 들어와 옛 기억을 더듬어가며 교정에 들어섰다. 큰 화분에 다양한 식물들이 자리고 있었는데, 황금측백나무도 있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힐링 그 자체였다.
마침 열매가 여물어 살짝 벌려지는 시기라서 씨앗을 구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마치 보석을 담듯 몇 알을 주머니에 넣고 돌아오면서 무척 신이 났다. 정말 이 씨앗을 심으면 나무로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측백나무가 씨앗이 아닌 뿌리로 번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될까, 안 될지도 몰라. 그런 양 갈래의 마음이 나를 더욱 흥분시켰다. 확신하지 못하는 일에 이토록 재미를 느낄 수 있다니, 난 그날 처음 알았다.
집에 돌아와서 주머니를 탈탈 털었다. 한 톨의 씨앗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봄에 파종을 해야 한다고 했다. 호기심때문에 봄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봄에 심을 씨앗을 남겨두고 11월이라해도 용감하게 심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3주도 지나지 않아서 싹이 났다. 신기하기만 해서 가족들을 불러 세워놓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수확도 아닌 파종에 이리도 기뻐할 수 있다니, 행복할 수 있다니, 내게 이런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니!. 모든 것에 감사하기만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됐다. 내 이기적인 욕심에 일찍 세상에 구경한 새싹이 겨울 추위에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쨍 하고 깨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 이렇게 자란 걸 보면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다.
아직 내겐 파종할 씨앗이 남아 있다. 날이 좀 더 풀리면 남은 씨앗을 심을 것이다. 그리고 잘 키워서 우리 가족의 울타리를 삼아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왼쪽은 씨앗 오른쪽은 열매 껍질
빨간머리앤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는 내일이 있어 행복한 빨간머리앤, 앞으로 정원형책방 글쓰기 카페를 운영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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