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레이션 #1.
완벽하지 않는 연습
나의 하루는 내레이션으로 가득 찬 영화 같다.
끊임 없이 들려오는 주인공의 목소리. 대사는 없다. 오직 주인공의 독백만이 영화의 사운드를 가득 채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내 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다. 아니, 싫다기 보단 어렵다고 하는 편이 좀 더 솔직할 것이다. 나의 입 밖으로 흐르는 떨림이 만드는 단어들과 그 단어들로 완성되는 문장이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매 순간 날카롭게 다가온다. 낯이 뜨겁게 적나라하고, 얼음장처럼 차가워 속이 불편하다. 나의 속살을 드러낸다는 것에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그 작은 파편으로 나의 전체 덩어리가 판가름 될 것만 같은 생각에 그 작은 조각 하나도 꺼내고 싶지 않다. 어쩌면 내가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당신의 그 작은 퍼즐 조각 하나 하나를 새로이 발견할 때마다, 제자리를 찾거나, 혹은 잘못된 자리에 억지로 끼워 맞춰질 때마다 두렵다. 내가 수만 개의 퍼즐 조각 중 겨우 하나를 쥐고 감히 전체 그림을 떠올려 버리는 그 순간이 두렵다. 남들이 나를 그렇게 판단할 거라는 생각에 화가 난다. 두렵고 서툴기에 화가 난다.
어렸을 적 나를 떠올릴 때, 종종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 과연 그때의 나는 정말 나였는지, 아니면 그때의 내가 진짜 나였는지 궁금해진다. 이전에 친하던 사람들을 오랜만에 재회하면 그 당시 그들의 눈에 비췄던 나는 지금의 나와 왜 그리 다른 건지, 그때가 거짓이었는지 아니면 지금이 거짓인지 스스로 목을 조이는 기분이다. 몇 년 만에 만난 그들이 반갑기보다 몇 년 만에 만난 내가 두렵고 속상하여 가슴 한 쪽이 답답해진다.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나는 항상 고민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며, 내 성향, 적성 그 따위의 것들. 하루에도 수백 번 나를 어르고, 달래고, 혼내고, 증오하고, 한심해하다가 사랑하려 한다. 나도 나를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스스로 이해하지 못 한 것을 설명할 수 없기에, 나를 설명할 수 없고, 당당하게 보여줄 수 없다.
나는 항상 준비된 사람이어야 했다. 빈 틈 없이, 실수 없이, 약점 없이. 준비된 것, 이해한 것에는 누구보다 자신감 넘치게 말하고 행동하면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잘 알지 못 하는 것에는 한없이 작아지고, 외면하고, 도망쳤다. 나 자신이 그렇다. 나를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고, 안다고 생각하다가도 매순간 변하는 내가 두려워 모르는 척 했고, 남들 앞에서도 그렇게 했다. 결국 모두가 나를 모르는 척 했다.
나의 하루는 나레이션으로 가득 찬 영화 같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주인공의 목소리. 대사는 없다. 오직 주인공의 독백만이 흐른다.
나는 조용할수록 시끄럽다. 끊임없이 생각이 흐르고 흘러 머릿속에 고이고, 결국 머리 끝까지 가득 차올라 눈으로, 그렇게 밖으로 흘러나온다.
나는 나의 독백을 대사로 바꾸려 한다.
장면과 소리가 분리되어 있는 나레이션이 아닌, 그 씬에 등장하는 인물에 목소리를 부여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수백 번 번복되는 감정일지라도 나는 나를 모른 척 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고 들으려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울퉁불퉁하고, 이해할 수 없고,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모두에게 보여준다. 나에게.
soboro
사진과 글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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