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인 어린왕자 속에 나오는 명대사입니다.
여러분은
식집사로서 설레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로로에 계신 여러분 중에서는
그로로팟에 의해서 처음으로 씨앗을 파종해서 키워보신 분들도 계실거예요.
저는 씨앗부터 키워본건 상추나 당근 등등
주로 키워먹을 목적이 분명한 종류뿐이었던것 같아요.
관상용인 초화류 등은 당연히(?) 싹이 난 상태로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인 모종 화분을 구입해서 키워왔구요.
그래서 저는 그로로를 알게된 덕분에
꽃을 씨앗부터 키우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
조마조마함, 불안함, 기대감, 실망감, 좌절감, 뿌듯함, 행복감 등등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씨앗을 물에 불리고,
그냥 바로 흙에 심는 것도 아니고
무려 '지피펠렛'이라는 난생 처음보는 핫템(ㅋㅋ)에 1차 파종을 하고,
드디어 씨앗에서 하나둘씩 떡잎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고,
어느 정도 새싹의 잔뿌리들이 지피펠렛을 점령하며 바깥세상으로 탈출을 시작하면
더 넓은 집으로 이사시켜주느라 온집안을 흙투성이로 만들기도 하고,
화분들을 낮시간 내내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어떻게든 햇빛을 보여주는 유목민 생활을 하다가
틔운 미니라는 신세계를 알게 되어 한층 더 게으른 식집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식물을 키우는 A부터 Z까지 설레지 않는 순간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베스트 포인트를 손꼽아보고자 합니다.
후보 3개를 나열해보자면,
1. 새싹이 나오는 순간
2. 봉오리가 생기는 순간
3. 꽃이 활짝 피어나는 순간
사실, 1번과 3번이 누구나 예상하는 베스트이겠습니다만,
오늘의 저는 감히 2번이라고 말씀드릴까 합니다.
사실 1번 과정에서는
'싹이 안나면 어떡하지',
'싹이 물에 녹으면 어떡하지',
'싹이 웃자라는 것 같은데 어떡하지',
'싹이 변색되고 시들시들한데 어떡하지' 등등
워낙 마음 졸이고 지켜보던 시간이 대부분인지라
사실상 새싹을 그저 예뻐만할 수 있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3번 과정은 당연히 그저 행복하고 어여쁘겠지만,
극단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언젠간 시들어버릴
'화무십일홍'의 덧없음을 그저 아쉬워할 따름이라 그렇습니다.
...사실 좀 억지이긴 하지요.
결론은, 저는 답정녀라 그렇습니다(ㅋㅋ)
자아.
오늘의 정답은 바로 2번입니다(!)
왜냐구요?
지금,
저의 작은 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몇몇 아이들이
너무나도 어여쁜, 탐스러운, 귀여운 꽃봉오리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거든요(!!!!)
도대체 언제쯤 꽃이 필까 전전긍긍하던 와중에,
어느새엔가 긴가민가하는 정도의 무언가가 몽글몽글 생겨나더니
어느새 그럴싸한 꽃봉오리가 되어주었습니다.
먼저, 스토크 하모니 크림멜로우 라는 친구입니다.
이름 그대로 연노랑빛 크림색의 꽃봉오리가 점점 몽글몽글하니 부풀어오르는 모습이 보이시지요?
다음은 토레니아 카와이 화이트 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새로운 이파리들이 쏙쏙 튀어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워~낙에나 잎이 무서운 친구라서
이틀에 한번씩 가지치기를 해주고 있거든요.
잘 보시면 가운데에 연두색의 무언가가 보글보글 일어날랑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격적으로 꽃봉오리 느낌이 나는 연두빛의 몽실몽실한 덩어리(?)가 덩치를 꾸준히 키우고 있습니다.
다섯가지 종류 중에서
맨드라미와 토레니아는 비교적 일찍 꽃을 피웠는데
나머지 세 친구는 한참동안 감감무소식이라
사실 좀 걱정했었습니다.
이러다가 앞의 두 친구가 시들어갈 즈음에나 피어나면 어쩌나 하구요.
금어초가 좀... 많이 늦긴 하지만(애는 착해유...)
다행히 나머지 두 친구가 영차영차해주고 있으니 이제 한시름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번외편 입니다
알부카 스피랄리스 라는
아프리카 희귀식물입니다.
양파같은 자그마한 구근에서
꼬불꼬불하고 길쭉한 잎들이 쭉쭉 자라나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입니다.
물을 자주주면 파마머리가 풀리고 위로 쭉쭉 곧게 펴진다고 합니다.
...저 처럼 키우시면 이렇게 됩니다.
물을 자주 주면 파마머리가 스트레이트가 된대서
한동안 물 주고 싶은거 참느라 외면하느라 애먹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두둥 하고 꽃봉오리 꽃대가 쑤욱 생겨났습니다.
이 친구 또한 연두빛의 꽃봉오리가 근사합니다.
어떤 색감의 꽃잎이 펼쳐질지 너무나도 궁금하지만
저어얼대로 미리 검색해보지 않을까 합니다.
혹시나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스포금지 부탁드립니다(엄근진)
참고로 이 친구가
알릿섬 클리어 크리스탈 화이트 입니다.
틔운 미니의 다섯용사들 중에서
두번째로 꽃을 피운 든든한 녀석들입니다.
마치 공수국처럼 조롱조롱 와글와글 쉴틈없이 꽃들이 피고지고피고지고를 반복중입니다.
향기는 상당히 상큼한 편입니다.
이 친구는 맨드라미 기모노 스칼렛 입니다.
타오르는 불꽃같은 외모가 포인트인 녀석이죠.
가장 먼저 꽃을 피워준 맏언니들입니다.
저의 정원 식구들 중에서는 유일한 원색꽃이 되어줄 예정입니다.
지피펠렛에서 너무 방치해두는 바람에 너무 쑥쑥 커버려서
그냥 화분에 심어준 맨드라미는 키가 훌쩍 컸습니다.
하지만 역시 틔운 미니의 빛을 직접 받느냐, 아니면 간접적으로 받느냐의 차이는
여기서 나타납니다.
직접 받는 아이들은 야무진 새빨간 색이지만,
곁에서 간접적으로 받는 아이는 약간 연한 붉은색에 꽃잎도 어째 듬성듬성합니다.
너무 꽃봉오리와 꽃잎에만 애정을 쏟아준듯 해서 살짝 미안해지려 합니다.
관엽식물이나 소나무처럼 푸릇푸릇한 잎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근사한 친구들이 많은데 말입니다.
열심히 가지치기를 해주는 와중에
저렇게 사이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오는 뿅뿅이 새싹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아... 실제로 보면 더더더더 귀엽습니다.....ㅜㅜㅜㅜ
그렇다면,
오늘의 결론을 살짝 식상하게 수정하겠습니다.
그 어떤 순간이라도,
설레지 않는 순간은 없다_라구요.
URang
취미가 직업이 되어버린 식집사이자 식물공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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