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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방 이게 무슨 일인고?!
URang24. 02. 20 · 읽음 176

 

 

여러분. 

 

사실 오늘이 저의 생일이예요. 

 

보통 식물을 선물로 받은 적은 많았어도

식물로부터 선물을 받은 적은 처음인것 같아요. 

 

물론,

 

식물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건강하고 싱그럽게 무럭무럭 자라주기만 바랄뿐이고, 

 

이렇게 존재만으로도 선물같은 녀석들에게

생일날 이토록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제가 키우고 있는 식물들 중에서

리톱스 라는 사막 위 돌멩이처럼 생긴 아프리카 희귀식물이 있어요.

 

평소처럼 화원에 직접 가서 고른 것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식물을 구입해본것은 이 녀석들이 처음이었어요. 

 

이녀석들은 택배상자에 담겨 날아올때부터 이렇게 생겼었어요.

 

 

 

몇몇 아이들은 으쌰으쌰 탈피과정중이고,

맨 위에 있는 녀석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예요. 

 

 

 

 

우리집 식구가 된지 몇달이 되었는데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찝찝하게 무언가 끼어있는 모습때문에 

볼때마다 참 갑갑하겠다 싶어서 신경이 쓰였었죠.

 

 

몇년전에 리톱스를 키워본적은 있었기에

아마도 잘려나가고 남은 꽃대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예전에 봤었던 꽃대 꽁다리(?)의 형태와는 좀 달라보여서

결국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았어요. 

 

 

저와 완전히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다른 식물카페의 몇몇 리톱스 식집사분들의 이야기로는

아마도 '씨방'일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로로 톡에서는 꽃대 잔여물이거나

곧 꽃이 피어나기 직전의 모습같다는 조언을 받아서

 

드디어 우리집에도 본격적으로 봄이 오나보다 싶어서 한껏 두근두근하며 기다리고 있었죠.

 

 

그리고 오늘 아침, 

 

통실한 아가 궁둥이같은 리톱스 몸체 중간에 끼어있던 무언가가 바싹 말라비틀어버린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어요.

 

 

자랑은 절대로 아니구요,

 

저는 식집사로서 매우 안 좋은 버릇을 가지고 있어요.

 

바로, 다육이에게조차 물을 자주 주는 

애정과다형 식집사라는 거예요.

 

여기 리톱스들 무리중에서도

저의 과하게 넘쳐나는 애정을 견디다 못해

흐물흐물 녹아서 초록별 가버린 녀석들이 한둘 있을 정도랍니다...

 

그래서 일단 이 녀석이 바싹 미이라가 되어버린 원인이 습도 부족은 절대로 아닌듯 해서 

또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문득 예전에 검색하다 본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리톱스 씨방 채취 관련 글이었습니다.

 

 

어느 식집사 분이 리톱스의 씨방에 물을 슬쩍 부어주었더니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스르륵하고 씨방이 꽃처럼 열리면서

그 안에 있던 씨앗들을 채집해낸 블로그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일단 물을 컵에 떠와서 스포이드로 약간의 물을 조심조심 씨방처럼 생긴 무언가의 위에 올려놔 보았습니다.

 

 

 

 

 

...와우.

 

이건 정말이지 영상으로 찍었어야 했는데....

 

마치 연꽃처럼 샤르륵 입구가 열리더니

연노랑빛의 깨알같은 씨앗들이 

바글바글 물에 불어나는 모습이란...!!

 

 

 

 

그 블로그 글에서는 

씨방이 물에 불어나서 입구가 열리려면 한참 걸린댔는데

저는 물을 붓자마자 바로 샤르륵 열려라 참깨였습니다.

 

아쉽지만 영상 대신 실시간 사진을 건져냈습니다.

 

보여드릴께요(뿌듯)(이건 자랑맞음). 

 

 

잠시 그저 감탄사만 내지르다가

 

우선, 씨앗이 물과 함께 흘러넘쳐서 유실되기전에

빈 그릇 하나를 챙겨왔습니다.

 

아기 간식 중 하나인 퓨레 그릇인데요,

흰색바탕에 워낙 깨끗하고 크기도 적당해서 먹이고 나서 바로 씻어서 꽤 모아뒀는데

틈틈이 거참 유용하게 쓰이는 그릇입니다(ㅋㅋ)

 

 

여하튼 스포이드로 물과 함께 씨앗을 건져내서

조심조심 빈그릇으로 옮겨내기 시작했습니다.

 

 

 

 

완전 두근두근 조마조마한 작업이었습니다.

 

물론, 

 

화분 안에 떨어지더라도

같은 리톱스 형아 누나들이 자라고 있는 화분이니

딱히 상관은 없지만

일단 오늘 저의 목표는 씨앗 채집이었기에

최대한 세심하고 꼼꼼하게 모든 씨앗들을 건져내기로 했습니다.

 

스포이드로 건져내다보니 시간은 좀 걸렸지만,

이 과정조차 너무나도 신기하고 서프라이즈한 경험이었기에 그저 행복했습니다.

 

너무 오랜시간 동안 열중하고 있었더니,

지루함을 못 이긴 아기가 달려들어서

결국 비교적 빠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핀셋을 가져와서 한손으론 리톱스 몸체를 잡고,

핀셋으로 씨방 껍질 부분을 조심조심 뜯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손으로 안 잡고 있었으면 큰일날뻔 했습니다.

 

생각보다 씨방이 너무 튼튼하게 붙어있어서

하마터면 몸체가 통체로 뜯겨나올뻔 했습니다.

 

 

겨우 뜯어낸 씨방껍질을 물그릇에 담아서

살살 흔들어 남은 씨앗들을 빼내보았습니다.

 

 

 

이제, 스포이드로 물을 좀더 보충했다가

씨방에서 나온 찌꺼기들을 최대한 제거해주고,

물도 가능한 제거해보았습니다.

 

 

 

 

원래는 티슈 위에 올려놓고 최대한 건조시켜볼까 했지만

혹시라도 티슈가 날아가서 버려지거나,

깨알보다 자그마한 씨앗들이 여기저기 날아가 흩어질까 무서워서

 

약간의 물기가 남은 상태로 

틔운 미니의 따스한 빛 아래에서 

천천히 건조시켜보기로 했습니다.

 

 

 

 

 

 

이제 리톱스 본체도 신경써서 깨끗하게 마무리해주었습니다. 

 

내부에 뭔가 더 보이는데

탈피 예정인건지 뭔진 좀 더 지켜봐야 알것같습니다. 

 

 

 

 

 

정말이지 오늘의 선물같은 소중한 경험은

앞으로의 생일날마다 문득문득 기억이 날 것 같습니다.

 

 

다음 기회에는

오늘 채집해놓은 리톱스 씨앗들을 파종해서 싹틔워보는 이야기를 써볼 수 있겠네요.

 

 

요즘 날씨도 흐릿하고 습도도 높아서

덜 마른 빨래 냄새가 눅눅하게 온집안을 맴도는 생일날이라

솔직히 아주 약간 우울했는데요,

 

 

특별한 경험 덕분에

지금 신나게 와다다닥 글써서 올리느라

두근두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ㅋㅋ)

 

여러분들의 소확행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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