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주 먼 시간까지 거슬러올라가야 할 것 같다.
아주 늦은 밤,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 알 수 없는 그윽한 향기가 느껴지더니 몸이 가벼워지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닌가. 집에 올때까지만 해도 지치고 피로감에 찌들어 웃음기라곤 전혀 없었는데, 알 수 없는 힘이 내 몸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것만 같았다.
출근하려고 막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집안엔 특별한 냄새는 나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향기의 근원지를 찾아보려고, 애써 집안 곳곳을 탐문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방향제조차 없는 집안에 향기가 피어나다니......, 향기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내가 없는 사이 요정이 들어와서 향기를 뿌리고 갔단 말인가.
시간이 더해지면서 , 향기는 더욱 깊어졌다. 점점 향기에 매료되었다. 현실로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도 신비로워서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았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인 도로시가 된 것 마냥 신기한 모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까지 했다.
그날밤 나는 평생 할 수 있는 상상을 다 해본 것같다. 혹시 사막의 신기루처럼 날이 새면 향기가 사라지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면서도 그날밤 마법같은 세상에서 단잠을 잤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마법이 사라진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났다.. 찾아온 행운을 혹여나 놓칠까 불안해서 방문을 확 열어 제칠 수가 없었다. 문을 살짝 열고 얼굴 반쪽을 내밀고 호흡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여 쉬었다. 콧끝에서 그윽한 향기가 여전히 났다. 어젯밤 바로 그 향기. 안도감이 들었다.
이건 꿈이 아니었어!. 몸이 지쳐서 착각한 것도 아니었어!. , 나는 신나서 두 팔을 벌리고 거실을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이건 분명 좋은 일이 있을 징조야. 신비한 힘이 흐르고 있는 만큼 힘든 모든 일들이 이젠 다 지나 갈거야!. 그래 그래야지. 그동안 받아던 정신적, 경제적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 참고 감내하고 이겨내려고 애쓰던 날에 대한 보답이 이제서야 있구나 싶었다. 그렁그렁 물방울이 눈에 차올랐다. 어느새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당시 남편의 사업의 실패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실패는 많은 것을 주었다. 상실감과 좌절은 물론이고 엄청난 채무까지 안게했다. 한번도 내 손으로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갚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하다니. 쉬는 날이라곤 고작 명절날이었으니 젊은 나이라해도 몸이 남아나들 않았다.
왜 그렇게 인사를 해야하는 친인척들이며 지인들은 많은지 한숨만 나왔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저녁엔 다음날 강의를 위해서 새벽까지 수업준비를 해야 하니 폭폭하기만했다. 중고등학생들 수업이라고 하지만, 어찌 실수를 이해받을 수 있단 말인가. 한 번의 실수, 그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도미노처럼 수강생 이탈이 커져갈테니, 빚을 갚을 수 있는 길을 영영 잃어버리게 되는 셈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는 수밖에 없었다.
매일 밤 꿈을 꾸었다. 핵심내용을 콕콕 짚어가며 학생들의 눈빛을 확인하는 나를 보았다. 그렇게 꿈에서도 현실처럼 늘 수업을 했다. 낮에도 밤에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그게 나였다.
항상 긴장하다보니 점점 예민해졌다. 작은 일에도 과민반응을 보여 상대를 난감하게 했다. 그때문에 오해가 생겨서 힘들었다.
오랜만에 언니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얼굴을 먼저 보고 싶어서 학원으로 온 모양이다. 반갑고 동생이 대견해서 집에서 처럼 허물없이 장난을 쳤다.
주말수업으로 분주하기도 했고, 학생과 상당차 방문하는 학부형들로 정신이 없는 상황에 예기치못한 언니의 장난. 신경질적인 얼굴에 짧고날가로운 말을 쑥 내뱉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일로 언니는 크게 토라졌다. 동생에게 무시를 받은 것 같아 상처를 받은 모양이다. 여러 번 사과를 했지만, 언니의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그런 일 때문에 수강생이 떨어진다해도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하고 넘어갔을텐데, 그땐 그럴 여유가 없었다.
빚은 생명체처럼 매일 자란다. 내가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산책할 때도. 올가미같은 빚. 납입기일에 맞추지 못하면 높은 이자가 부과되고, 다음엔 금융거래 중지, 최종적으론 차압. 잠깐 정신을 놓고 빈틈을 보이면 이때 하고 공격할 태세다.
빚은 깊은 우물 같았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 갚아도 갚아도 줄어들지 않는 빚. 더구나 내 능력에 비해 큰 액수의 빚. 일을 안하는 날을 없지만 내 주머니는 늘 비었고 맨주먹이었다.
이렇게 갚아서 갚아질까 싶었다. 그저 바보처럼 무작정 갚다보면 갚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갚아갔다.
빚을 지게 했으니 빚을 갚을 방법도 있겠지. 죽는 날까지 갚다가 못 갚으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썼지만, 정작 내 몸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차츰, 빨래를 꽉 짜는 듯한 압박감이 내 심장에느껴졌다. 가슴이 조여들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에 통증이 일어났다. 날이 갈수록 증세는 빈번해지고 통증정도는 커졌다. 혹시 내게 무례하게 중병이 찾아온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이대로 끝나는 것은 아니겠지. 무서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향기가 진동하자, 뭔가 신비한 힘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 기운이 현실적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기이하고 신비한 향기는 여러 날 계속되었다. 처음엔 불가사이한 일로 생각됐지만, 차츰 향기의 근원이 어딘지 알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집안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탐문을 여러 차례 한 끝에 마침내 알아냈다. 바로 행운목 꽃이었다.
한 뼘도 안 되는 행운목 토막을 구입해 수경재배를 하여 뿌리가 내려서 화분에 심었다. 몇 년이 지나자 베란다 천장에 닿을 만큼 자랐다. 곁가지를 내지 않고 키만 자랐다. 내 눈높이에선 오백원 동전 굵기의 줄기만 보였다. 바쁘다 보니 행운목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쭉 한 번 살펴볼 새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행운목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행운목 꽃이 천장에 닿은지를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하루는 허리를 굽혀 화분에 물을 주자 허리가 뼈근하고 아팠다. 허리에 손을 짚고 폈다. 아 이게 왠 일인가. 천장에 알 수 없는 열매가 눈에 들어왔다. 이상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아주 작은 꽃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꼭 파꽃같았다.
그때서야 아하! 이 향기가 바로 행운목꽃이었구나!, 비로소 불가사이한 일의 실체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사실을 알고 난 후, 신비한 기운이 흐르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며칠 간 나를 들뜨게 하고 희망을 준 행운목이 좋았다.
그때부터 나는 행운목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어딜 가든 행운목을 키운다. 지금도 행운목을 키우고 있다. 옛날처럼 행운목이 베란다 천장까지 닿아서 작년 가을에 키를 낮추는 작업을 했다. 그 덕에 행운목 가족이 탄생했다. 이미 수경재배를 해서 뿌리를 내린 3개를 화분에 심었다. 행운목꽃이 한참 힘들 때 내게 위안을 주었던 것처럼 또 다시 내게 큰 행복을 주리라 믿는다.
빨간머리앤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는 내일이 있어 행복한 빨간머리앤, 앞으로 정원형책방 글쓰기 카페를 운영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댓글 6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