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그로로 월간테마를 보고 막막했다. 요즘 내게 대체 '처음이라 설렐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일도 취미도 늘 하던 걸 계속 하지만 도통 수월해지지 않는다. 맨날 하는 것도 잘 못하는데, 무언가 새로 시작하는 건 너무 큰 바람이다. 시작하지 않는데 처음을 어디에서 찾는담.
회사에서 늘 하던 일을 하고, 퇴근 후 늘 다니던 체육관에 갔다. 부족한 근력 탓에 몸 여기저기 통증이 오자 살기 위해 다니기 시작한 곳이다. 일주일에 한번 갈까말까, 띄엄띄엄 다녔지만 벌써 1년하고도 2개월이 됐다.
오늘은 수요일, 케틀벨을 활용한 가동성 운동의 날이다. 가볍게 몸을 풀고 케틀벨 겟업을 시작했다. 터키쉬 겟업이라고도 하는데, 어깨 가동성을 높이고 코어 근력을 키우는 운동이다.
처음 겟업 자세를 익히고 나서 들었던 케틀벨의 무게는 8kg. 귀여운 무게지만 평생 근력 운동이라고는 모르고 살았으니 한 손으로 8kg짜리 쇠공을 드는 것이 버거울 수 밖에. 약골 집안에서 나고 자라 종이인간들과 겨루며 '그래도 나는 힘을 좀 쓰는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조그만 케틀벨 아래에서 파들파들 떠는 가여운 내 팔을 보고 그것이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자세가 익숙해지자 조금씩 무게를 늘려가며 찾은 내 적정 무게는 12kg이었다. 이 정도면 오른손으로는 안정감있게 밀 수 있고, 왼손으로는 컨디션에 따라 복불복인 무게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왼손으로도 12kg까지 거뜬했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무게를 14kg으로 올려봤는데, 이번에도 성공. '어라, 이게 되네?' 하는 마음으로 16kg까지 올렸는데 양손 모두 성공이다. 내친 김에 더 올려보고 싶었지만 무리한 욕심은 부상을 부르는 법이니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왼손으로 16kg 케틀벨을 밀 수 있다니, 처음 시작한 무게의 두 배를 밀게 된 것 아닌가!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알량한 팔근육을 만지작거리며 실실 웃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처음'을 꼭 새로운 일에서 찾아야 하는 건 아니다. 맨날 똑같은 하루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매일 새로운 도전 과제가 있다. 매일의 작은 도전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 매일의 작은 성취에 기뻐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구이일
3년차 도시 농부이자 글쓰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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