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집에오면 가장먼저 하는 일이 있다. 나의 식물들에게 인사하기. 이제 나무가 되려는지 점점 목질화가 되가는 나의 반데라들과, 요새 식물등의 집중케어를 받더니 엄청나게 풍성해진 블루필라, 라필라와, 늘 노심초사하게 만드는 백묘국, 그리고 새로이 지피펠렛에 자리를 잡은 비올라, 코스모스, 메리골드, 플록스 순서로 안부인사를 건넨다. 물이 부족하진 않은지 화분도 들어보고,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통풍이 전혀 안되었을 녀석들을 위해 선풍기도 재빠르게 돌려준다.
그런데. 코스모스새싹들이 기지개를 편 지피펠렛에서 뭔가 움직였다. 나는 유난히 밝은 이목구비를 가졌는데, 눈도 밝고 귀도 밝고 하다못해 혀도 밝다. (혀가 밝다는게 무슨뜻이냐하면 입맛이 그만큼 까다롭다는 의미이다. 귀는 남들 표현으로 소머즈라나..뭐라나.) 그런 내 눈에 점보다도 작은 빌런이 눈에 띈것이다. 벌.레. 무슨벌레인지는 상관없다. 그냥 벌레가 생겼다는 것 만으로 기겁을 해버린 나는 당장 코스모스 새싹이 있는 지피펠렛과 그 옆에 있던 메리골드 지피펠렛을 베란다로 격리시켰다.
"벌레가 생겼으니 버려야하나.."라는 고민도 잠시, 그럴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고 바로 분갈이에 들어갔다. 분갈이라 하니 좀 이상하지만, 여튼 분으로 이사를 감행했다.
이럴경우를 대비해 깨끗이 씻어 말려 모아놓은 커피컵에 송곳으로 배수구멍을 뚫고!
녀석들을 준비 시켰다. 이제 고개를 들려던 코스모스새싹 두개는 벌레를 퇴치한다고 막 지피펠렛 해집다가 꺾이고 빠지고 난리가 났다. 그래서 최종 세개. 벌레에 정말 취약한 나는 이 날, 정말 정신이 없었다. 오죽하면 같이 하겠다던 딸내미조차 성가셨으니까.(이 글을 빌어 딸램 미안. 너무 엄마가 짜증냈지.)
커피컵에 상토를 채우고 녀석들을 바로 이사시켰다. 그런데 아주 바보같은 행동을 했다. 지피펠렛에 벌레가 생겨서 분으로 옮기려고 했던건데..
이렇게 넣어버린거. 그러고도 한참 뭐가 잘못됐는지 몰랐다가 흙으로 다 덮고나서 아차 싶어서 다 엎고 지피펠렛 다 해체하고 뿌리 끊어먹고 겨우 완료한건 안 비밀. 해체된 지피펠렛은 바로 봉지에 격리되어서 집밖의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벌레는 아주 초장에 잡아야지! 그런데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분으로 옮기는 바람에 뿌리를 거의 다 끊어먹다 싶이 해서..마음이 너무 안좋았다.
그리고 벌레를 한번 봐서 그런지 찝찝함이 마음 한가득 차올랐지만 그렇다고 새벽이면 여전히 추운 이 날씨에 베란다에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 숨한번 크게 쉬고, 마음도 진정시키고 다시 틔운위로 데려왔다.
녀석들은 살 수 있을까. 식물은 생각보다 강하지만, 벌레는 그보다 더 강해서 정말 속절없이 가버리는 모습을 몇번 봤기에 마음이 침울했다. 하지만 식물을 3년째 키우면서 식물보는 눈도 조금씩 생겼는데, 본잎이 움트려는 그 순간을 기가막히게 포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 코스모스들은 다 본잎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비올라도 본잎을 품을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다행이다..진짜 다행이다..날이 따뜻해지면서 식물들이 움츠렸던 몸을 조금씩 펴는 모습이 보인다. 새순도 많이 내보이고 꽃도 많이 피워내고. 너무 보기 좋고, 식집사로서 행복한 순간이지만 .. 날이 따뜻해지는게 마냥 반갑지는 않다. 그만큼 벌레 역시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거니까. 그래서 이번 분갈이를 하면서 미리 벌레퇴치용 약을 모든 화분에 쳤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다 방제가 되진 않을테니까, 써큘레이터를 이제 드디어 개시해야겠다.
그런데 코스모스를 한참 바라보다..이런생각이 들었다. 처음 키웠던 멜람포디움 잭팟골드도 씨앗 10개중에 솎아주기하고, 꺾이고 한 새싹들 말고 딱 세개가 남았었다. 그래서 주니어 1-3호로 풍성하게 키웠었고, 라벤듈라반데라의 경우는 운이 좋게 9개를 다 키우다가 네개가 얼어죽는 바람에 현재 다섯녀석이 남아있지만, 블루필라라필라 같은경우에도 분명 다 발아했는데 다 녹아버리고 새싹 세개가 남아 현재 크고 있고, 코스모스도 5개가 다 발아했는데 이번일로 세개의 새싹만이 생존했다.
뭔가 3이라는 숫자가 자꾸 내 식집사생활을 따라다니는 느낌. 우연의 일치일까.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행웃의 숫자라고 하면 7을 떠올리지만 그 옛날 조상들은 3을 행운의 숫자로 생각하곤 했단다. 음, 살아남은 코스모스 세송이가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려나~~행운도 좋지만 남은 녀석들을 키우는 동안 벌레나 안봤으면 좋겠다.
진짜싫다. 벌레.
파초청녀
커피를 사랑하고, 환경지키는것에 관심이 많으며,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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