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은 내가 지킬게
푸른뮤즈24. 03. 14 · 읽음 35

친구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커피숍을 고른다.

 

"어디 커피숍 갈까?"
"이 근처에 커피숍이 어디 있지?"
"저기 000 보이네. 가까운데 저기 갈까?"
"나 000은 별로라. 0000 가자."
"그래."

 

이후 다른 친구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대화를 나눴다.
커피 취향은 사람마다 달랐다. 때론 커피숍이 다르고, 때론 커피 종류가 달랐다.

 

"난 얼죽아야."
"난 산미 있는 건 안 마셔."
"여기 커피는 너무 진해."
"난 너무 단 커피는 안 좋아해."


커피 맛을 잘 모르던 시절. 내 입엔 다 똑같았다. 아메리카노는 쓰고, 라테는 부드럽고, 마키야또는 달다. 
그게 끝이었다. 똑같은 아메리카노인데 커피 브랜드 별로 맛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살짝 놀랐다.
친구들을 따라 커피를 음미해 봤지만 수수께끼 같았다. '뭐지? 뭐가 다른 거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커피숍을 가는 목적은 하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시공간에 불과했다.


아메리카노는 쓰고, 마키야또는 너무 달아서 주로 차를 마셨다. 집에서도 마시는 차를 밖에서도 돈 주고 사 먹자니 괜히 아까운 마음도 한편 들어 돈을 조금 더 내고 평소 마시기 힘든 음료를 택하기도 했다.

 


 

내 커피 취향을 모르는 친구가 '무슨 커피 좋아해?'라고 묻길래, '믹스커피'라고 했더니 한참을 웃었다.
웃긴 일인가 싶어 갸우뚱했지만 왠지 나이 든 느낌이 나는 것 같아 나도 따라 웃었다.

신기한 건 어떤 믹스커피를 좋아하는지 질문은 별로 받아본 적이 없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나라 믹스커피 브랜드는 대략 5개 정도. 그중에서 다시 5-6가지 종류로 세분화된다. 생각보다 적지 않은 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커피숍마다 맛이 다르듯, 믹스커피도 맛이 전혀 다르다.
꼭 그 믹스커피여야 하는 이유는 분명 있다.
그 맛이 아니면 내겐 의미가 없으니까.

 

친구 집에 놀러 간 날,
내가 마시지 않는 믹스커피를 내밀며 "그냥 대충 마셔" 하길래 정중히 거절했다.
그 친구는 특정 커피숍 아니면 안 가는 친구였다. 친구를 탓하는 건 아니다.

커피는 취향이다.
하루에 커피 한 잔 이상이 일상이 된 요즘, 조금은 고집스러운, 타협이 힘든 취향.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은 하루 고정값이다.
고된 하루에 속한 작은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은 욕심이 아니다.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욕심이다.

친구의 호의를 애써 거절하고 웃으며 말한다.

 

"그럴 줄 알고 내가 가져왔어. 잘했지?"

 

가방 한 구석에 혹시 몰라 가지고 다니는 믹스커피 한 봉.
친구와 나는 함께 웃는다.

 

걱정 마. 나의 취향은 내가 지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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