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콜라를 새로 따서 긴 컵에 가득 부었다. 그날따라 얼음도 잔뜩 넣고 싶어 먹고 싶어서 평소에 잘 넣지 않았던 얼음도 넣고 완벽했다.
마시는 일만 남았는데 그날따라 옷에 걸려서 텀블러 컵이 컴퓨터 책상에서 확 쏟아졌다.
쏟아지기 전만 해도 완벽했던 음료수가 쏟아지고 나니 치워야 하는 문제와 걱정거리로 변했다. 조금 멍하게 바라보다가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조금 멈칫했다. 내게 잘 일어나지 않았던 사고였지만 그게 왠지 어떤 징조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많은 음료수가 정작 중요한 물건을 적시지는 않았고 소파 밑으로 들어가지도 않았고 어디까지나 내 선에서 처리가 가능한 범위만 어질러지고 망가뜨렸다.
이쁘다고 생각하고 간직했지만 망가지고 나니 생각보다 별로 아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자질구레하게 모았던 물건들을 조금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직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쓰지는 않았던 물건들은 어느 정도 흘려보내야 내 마음도 고여있지 않고 흘러갈 테니까. 그래서 뭔가를 버릴 때는 언제나 꽉 막혀있고 고여있던 마음들을 같이 넣는다는 기분으로 물건을 버렸다.
좋은 상황이라고 완벽하다고 여겼던 게 순식간에 내 욕심의 깊이만큼 가득 담은 끈적한 물들이 외부적인 충격들로 어쩌면 환경 변화나 자연재해로 범람해서 재앙이 되어 나나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걸 덮칠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좋은 일이 끝까지 좋게 작용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주 나쁘지도 않고 적당히 안 좋다고 여겼던 일이 내가 어떤 일을 알아차리게 해주기 위한 신호이고 도움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쁜 일과 좋은 일은 한 끗 차이일지도 모르지. 그게 얌전히 안에 담겨있냐 엎질러서 엎어지느냐의 아주 작은 차이로 극명하게 갈렸던 것처럼.
릴랴
자기가 쓰고싶은 글을 쓸 뿐인 사람
댓글 2
첫 번째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