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해바라기지!
해바라기 마주하기
미리 만나보는 해바라기
고등학교 졸업식 날, 단짝 친구가 교통 사고로 하늘나라로 거주지를 옮겼다. 친구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 해바라기였다. 그래서였을까? 나에게 해바라기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슬픔이었다. 해바라기가 무서웠고, 슬펐다. 물론 여전히 해바라기를 보면 친구의 이름이 떠오른다. 시간이 꽤 흘러서일까? 해바라기를 키워보고 싶었다. 키우면서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단짝이 좋아했던 해바라기라 계속 그 친구를 생각하며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개화한 시점, 나는 이쁘다는 생각보다도 역시나 친구가 먼저 생각났다.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을 그녀에게, 그리고 이 땅에서 잘 지내야 하는 날 위해 해바라기로 내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
보고 싶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그날을 꿈꾸며,
해바라기를 너에게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이 꽃을 선물로 삼고 싶다.
너와의 추억을 간직하며,
▶ 틔운미니, 키작은 해바라기 키우기 ◀
파종에서 개화까지 65일 관찰일기
집에서 해바라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키가 큰 해바라기는 감당할 수 없어, 미니종을 택했다. 파종하고 6일 뒤 새싹이 올라왔고, 떡잎과 본잎이 급속도로 커졌다. 마이리틀가든, 꽃다발을 키울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일었다. 빠른 성장이 재미있었고, 신이 났달까?
31일 차의 초록함, 36일 차엔 약간의 변화를 주고 싶어서 틔운미니 꽃다발 키트를 꾸몄던 '푸우'를 데려와 해바라기 사이에 두었다. 꿀 찾는 푸우가 해바라기랑 더 잘 어울려서 좋았다. 그런데 36일 차가 되면서부터 해바라기의 뿌리들이 직립보행을 하는 듯, 씨앗키트가 들렸다. 뿌리 힘이 정말 좋았고, 이 시점부터 거의 매일 물 수발이 시작되었다.
보이는가? 씨앗키트가 살짝 들려 있는 것이? 궁금해서 홀더도 들어 올려 보았다. 뿌리가 가득 찼고, 물은 다 먹어 뿌리가 말라 보였다. 홀더 밖으로 뿌리가 나왔다. 36일 차의 해바라기는 너무나 건강했고, 튼실했다. 뿌리마저도 새하얀 것이 '나 건강해'라고 반증해 주는 듯했다.
42일 차의 해바라기는 제법 키가 자랐다. 중간중간 해바라기 통풍과 벌레 유입을 막기 위해 줄기 정리를 수시로 해주었으며, 씨앗키트 들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주 2회씩은 홀더 밖으로 튀어나온 뿌리를 정리해 주었다. 물 주기도 하루에 두 번으로 늘렸는데, 한 번은 너무 바쁘고 귀찮아 물을 말렸더니 물통에 물이 한 방울도 없던 날도 있었다.
잎 사이에서 봉오리를 발견했다
49일 차쯤 되었을 때엔 꽃봉오리가 제법 커졌다. 어찌나 이쁜지, 잎 가운데에 있는 샛노란 봉오리를 보는 것이 힐링이었다. 줄기를 솎아 주지 않으면 해바라기들은 급속도로 곁순을 냈고, 눈에 보이는 대로 곁순 정리 해주었다.
53일 차의 해바라기 미모는 여전했다. 60일이면 꽃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뿌리를 자주 제거해서일까? 잎을 자주 제거해서일까? 기대하는 마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매일 물을 주며, 가끔 님오일을 뿌리며 개화하기만을 기다렸다.
61일 차의 해바라기는 키가 제법 자랐다. 대략 17cm 정도 된다. 틔운미니에서 키우기 적당한 키랄까? 처음에는 이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된다!' 이 꽃받침을 보시라. 꽃받침 안쪽에 드디어 보이는 노란 잎들! 61일 차의 나는 너무 설레었다. 한참을 틔운미니 해바라기 앞에서 서성거리고 사진을 수십 장 찍었다.
이렇게 이쁠 일인가?
그렇다, 이쁠 일이다.
자고 일어 났더니 변화가 생겼다.
"꽃을 피우기 직전 설렘 가득한 봉오리"
꽃잎이 살짝 벌어진 게 앞으로 활짝 필 모습을 예고하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반나절 사이에 해바라기들은 꽃을 틔웠다.
만개한 꽃들을 보니 문득 네 생각에 코끝이 찡해졌다. 네가 좋아하던 해바라기, 환하게 웃는 네 모습 같았다. 우리의 철없던 시절, 고등학교 3년 내내 붙어다녔던 너,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취업을 했고, 결혼도 했다. 해바라기를 보니 문득 그 시절 우리의 약속이 생각났다. 대학가면 함께 자취해보자라는 말. 함께 배낭여행 가보자는 말. 너와 함께했던 약속들은 나 혼자 다 해보았다. 학창시절 내가 좋아했던 친구, 마음을 열었던 유일한 친구. 네가 있어서 따뜻했던 지난날이 생각난다. 사고 후 네 사진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던 그날, 어머님이 내게 말씀하셨어. 우리 OO이를 기억해 달라고 말이다. 너가 살아온 날보다 나는 더 많은 시간을 살았고, 어느덧 어른이라고 하는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널 잊어본적은 없다. 슬픔의 무게는 지난날 보다 가벼워 졌지만 불현듯 생각 날땐 약간의 우울감이 몰려오기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네가 생각날땐 눈가가 촉촉해 진다.
해바라기를 키워보니 그 시절 노트에 해바라기 그리고 낙서했던 우리의 시절이 떠오른다. 네가 좋아했던 해바라기를 처음 마주하고 키워보았다. 해바라기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라고 한대. 영원한 나의 친구, 너는 내게 그런 해바라기 같은 존재였다. 여튼 이쁜 꽃을 너와 나에게 선물하도 싶다. 그리고 이 땅에서 나는 20년 가까이 너를 기억했노라고.
진봄
【봄달, 틔운에 진심인 식집사, 봄달정원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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