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높은 빌딩 숲 옆으로 조금만 비껴 한강 쪽으로 가면 울창한 숲이 나온다고 해서 가 봤어요. 진짜 믿기지 않는 울창한 숲이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갈 때에는 주변 자동차 소리가 너무 심하게 나서 긴가민가 했지만 곧 '서울에 이런 곳이!'하고 놀라게 되는 숲으로 들어갑니다. 오늘은 수양 버들 꽃가루가 마치 눈처럼 떨어져 옆으로 흐르는 샛강 위에 눈처럼 흐르더라구요.
(그러나 꽃가루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피해야 겠습니다)
나무는 본격적인 봄으로 들어가 연두잎들이 첨첨 청아하게 푸르러 지고 있었고 저녁 무렵 안온한 햇빛에 마치 꿈처럼 물들었습니다.
막 피어나는 초록빛 사이로 앙증맞은 꽃들이 숨어 있어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
흐르는 샛강 위로는 나무 다리들이 편안하게 놓여져 산책하기 좋았고
가다가 경쾌하게 흐르는 맑은 시냇물도 만났어요.
시냇가에는 창포잎이 푸르르던데 곧 창포꽃이 펴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 것 같아요.
믿기지 않는 숲길을 걸어가니 항상 식물 속에서 그렇듯이 숨결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 풍경은 정영선 조경가가 만든 것이라고 해요. 자연 그대로를 살리면서 누구나 칸트나 하이데거처럼 숲 속을 걸으며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1996년경 서울시 의뢰로 만들었는데 처음 설계도를 가져 갔을 때 '주차장은 어디 있냐?' '매점은 어디 있냐?' '벤치가 왜 이렇게 없냐'라는 불평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대형 주차장과 축구장을 먼저 만들어 달라는 한강 관리 소장 앞에서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읽어주면서 설득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정영선 조경가를 좋아할 수 밖에 없더라구요. 선유도 공원, 경춘선 숲길, 서울 식물원, 호암 미술관 정원 희원, 아모레 퍼시픽 본사 정원, 아모레 퍼시픽 북촌 플래그 샾 정원, 제주도 설록티 정원 등 제가 가 보고 너무 힐링을 얻은 장소들을 모두 만드셨어요. 요즘 MZ 세대들의 핫 플레이스가 되기도 했구요.
정영선 조경사는 우리나라 조경 역사의 1세대인데 그 분 밑에서 많은 조경사들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땅에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 조경을 한다고 합니다. 서양적인 조경은 되도록 따르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살리기에 노력을 많이 한다고 해요.
한강 샛길 생태 공원도 조경한 줄 모르고 사람들이 숲길을 걸으며 식물로부터 마음이 평화를 얻고 상처를 치유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설계했다고 합니다.
지금 선생님의 조경 전시회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4월 5일부터 9월 22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설계도 같은 것을 전시하기도 했지만 직접 미술관 중정에 만든 정원도 있다고 합니다. 곧 가보려고 하는데 너무 기대가 되네요.
한강 샛강 생태 공원은 국회 의사당에서부터 여의도 한강 공원에 이르기까지 6 km의 길이로 산책로가 있어요. 9호선 샛강역에서 가까워요. 5월이 되면 창포꽃이 만발해서 너무 아름다워질 것 같습니다.
지하철을 내려 곧장 은밀한 샛강 생태 공원의 숲 속으로 들어가 보세요. 산책하기 좋은 계절을 놓치지 맙시다!
꽃사슴
20 여년간 식물이들과 함께 한 식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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