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롭고 낯선 하루가 계속되었다.
부부가 처음 론칭했던 브랜드는 점점 더 규모를 키워갔고, 남자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쇼룸 겸 집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다시 한번 보금자리를 옮겼다.
여기가 바로 그곳이다.
합정동 주택가에 있던 이곳은 2층이었고, 제법 넓은 공간이었다.
사무실을 리모델링해서 쇼룸처럼 사용했는데,
부부는 다른 초록 친구들도 함께 들여 생기 있는 스튜디오를 만들려고 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고목나무인 마빈이었다.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몬스테라인 히메라는 친구도 스튜디오로 입주했다.
그러고 보니 이때까지도 내 이름은 없었다 ㅠㅠ
나는 그냥 미니미라고 불렀던 것 같다 ㅠㅠ
부부와 함께 한지도 3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지만 나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영양도 부족하고 햇빛도 물도 불규칙했기 때문에 나는 마음껏 자라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저 작은 플라스틱 통 안에서는 너무 좁아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살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부부는 이런 나의 상태를 전혀 알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더 큰 나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부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ㅠㅠ)
부부의 관심은 온통 마빈이와 히메에게만 가 있었다.
***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부부는 점점 더 바빠지고 심지어 일주일씩 지방 출장에 가는 일도 많아졌다. 정말 안타까웠던 것은 그렇게 바쁘게 사업을 꾸려나갔지만 부부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뭐가 뜻대로 잘 안되는지 남자는 항상 근심에 차있었고, 여자는 늘 지쳐 있었다.
이제는 나는 물론 마빈이와 히메도 점점 소외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곳 쇼룸에 방치되었고, 어느새 아무도 우리를 돌보지 않았다. 3-4일에 한 번씩 주던 물도 점점 더 그 주기가 멀어져 갔다.
그리고 결국 히메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
부부는 너무 슬펐지만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마빈이도 하늘나라로 떠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때 생을 마감했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나도 이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쇠약해졌다.
예상대로 부부의 사업은 점점 더 내리막길로 접에 들었고, 우리 집에는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다.
***
나는 죽음에 문턱에 와 있었다.
어떤 날은 멍한 상태도 축 늘어져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아예 의식을 차릴 수도 없었다.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생각을 매일 반복하며 의식을 잃어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곳에 있었다.
여자는 집안에 남아있는 유일한 식물이 나를 위해 집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나를 옮겨 준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정말 나에게 최악의 선택이었다. 그 작업실방은 가방을 만드는 곳이었기 때문에 온통 본드 냄새가 가득했다.
당연히 환기도 안되었고, 나는 하루 종일 본드 냄새를 맡으며 그 숨 막히는 공간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정말 너무 힘든 순간이었다.
나는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부부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잎사귀에 힘을 빼고 축 처진 모습을 보여 주었다.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모든 잎사귀를 노란색으로 물들여 "나 정말 아파요!!"라고 신호를 보냈다.
소용이 없었다!!
나는 정말 화가 났지만 이제는 화를 낼 힘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살았다.
부부도 나도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
결국 남자는 사업을 정리했고 많은 빚을 얻게 되었다. 문득 나는 그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부부가 열심히 살아보려고 그렇게 모든 열정을 다해 도전을 했을 텐데 세상 일이라는 것이 뜻대로 되질 않으니 얼마나 좌절을 했을까? 나는 -- 나도 정말 힘들었지만 -- 부부에게 뭔가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마지막 힘을 다해 내 모든 에너지를 뿌리에 집중했다.
어쩌면 이것이 나에게도 부부에게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부부가 보기를 기다리며 플라스틱 통 밖으로 뿌리를 뻗어내기 시작했다. 그 뿌리를 보고 삶의 희망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나를 바라봐 줘요!!!
그리고 드디어 여자가 플라스틱 통 밖으로 나와 있는 나의 뿌리를 발견했다!
여보~!!! 이리 와봐~!!!
어머머!!! 세상에 ㅠㅠ 이 아이 뿌리 좀 봐!
어떻게 해 ㅠㅠ 우리가 정말 너무 무심했나 봐 ㅠㅠ
부부는 나를 보며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미안했다고 다시는 나를 이렇게 방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함께 넘기며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되었고, 그때부터 부부는 나를 "베니(benir : 축복하다, 신의 가호를 빌다)"라고 불렀다.
부부와 함께한 지 3년째 되는 겨울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12살 베니의 고군분투 성장일기!!
지난 이야기,
Co2n
Husband, Storyteller and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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