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그릇의 크기와 모양을 잘 아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그것은 아무도 알려줄 수가 없다. 심지어 부모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그래서 나를 만나야 한다. 내 마음 깊숙이 조용하게 자리 잡은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는 어떤 그릇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것인가.
***
하루가 다르게 계속 커 갔던 나는 결국 ‘휘청’ 하고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사실, 이때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매일매일 미친 듯이 자라났다. 이건 너무 빠른데...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출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용돌이에 휩싸여 정신을 잃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나는 이런 상태로 끈에 묶인 채 중심을 잡아가고 있었다.
부부는 나를 걱정하는 얼굴로 매일 저녁 회의를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모두는 궁극적인 문제점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러 나는 얇은 끈에 몸을 기댄 채 다시 또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 보름 만에 80Cm가 더 자라났다.
또 한 번 두 배의 성장을 한 것이다.
결국 나는 천장을 뚫고 휘어질 만큼 자라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연이도 같은 시기에 남자도 회사에서 과부하가 왔었다고 했다.
그도 나처럼 좋은 환경과 기회를 얻었고, 그에 맞춰서 계속 열심히 하다 보니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을 부여받게 되었다. 성과에 따른 보상이 많았기 때문에 조금 벅차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남자는 계속 전력 질주를 했고, 그 많은 역할들을 해냈다. 그리고 그도 나처럼 번아웃이 오고 말았다.
우리는 과연 이런 폭풍 성장이 맞는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너무 행복한 고민이 생긴 것이다. 예전에는 성장의 기회조차 얻을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나에게 맞는 성장 속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으니. 정말 하늘에 감사할 일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은 멈춰야 할 때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
알고 보니 나는 웃자란 경우였다.
**원예 용어로 ‘웃자라다’라는 표현은 식물이 적당한 속도로 자라야 하는데 키만 크고 실하지 않게 자라는 경우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녹보수는 적당한 때 가지치기를 해서 성장을 멈추게 하고 새로운 곁가지를 내면서 풍성하고 균형 있게 키워야 하는데 나의 경우는 그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리고 불행 중 다행으로는 웃자라는 것치고는 줄기가 튼튼하게 자라서 아주 큰 키가 될 때까지 넘어가지 않고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부부는 큰 결심을 하고 나의 윗가지를 과감하게 자르기로 했다. 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뭔가 갑자기 멍한 기분이 들었다.
흐름이 끊겨버린 느낌이랄까.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갑자기 멈춰야 한다니.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시간이 흘러 나는 두 갈래로 굵은 줄기를 뻗었다.
그리고 습관처럼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줄기가 자라났다. 하지만 이제 부부는 가운데 자라는 생장점은 단호하게 잘라 내었다.
나는 또 위를 향해 새로운 줄기를 뻗어냈다.
항상 위를 향해 솟아오르던 나의 습관은 그렇게 단시간에 바뀌지 않았다.
부부는 또 잘라내었다.
그렇게 우리는 더 이상 위로는 자라날 수 없다는 사실을 점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가지치기를 하고 확실히 몸집이 풍성해지기 시작했고, 몸집이 풍성해지니 더이상 보조 끈이 없어도 뿌리로 나를 지탱할 수 있었다. 나는 몸의 균형, 삶의 균형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휘청했던 뜨거운 여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
12살 베니의 고군분투 성장일기!!
쿠키 >>
훗날 이 끈으로 묶었던 자리는 저에게 문신처럼 남게 되었답니다!! 전성기 시절의 흔적이랄까요!! 시간이 지나면 모두 추억인 것을...그래도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네요^^
그럼 내일 만나요!!
지난 에피소드,
Co2n
Husband, Storyteller and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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