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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8. 땅에 심어지는 그날까지 [마지막회]
Co2n24. 03. 18 · 읽음 87

 

 

겨울의 남양주.

 

특히 눈 덮인 숲의 모습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경이롭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하얀 눈으로 감싸주고,

 

다 괜찮다. 그동안 수고했다.

봄이 올 때까지 그렇게 잠시 가만히 있으렴...

 

하고 말해주는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수 많은 시련과 풍파를 견디며 묵묵히 한 걸음씩 나아갔던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니,

 

'나는 전보다 얼마간 터프해졌고 전보다는 얼마간(아주 조금이지만) 지혜가 붙은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이제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

 

 

1년 전 이곳에 이사를 하고 부부가 나에게 가장 먼저 해 준 일은 주치의 선생님을 찾아 건강검진(?)을 받도록 한 것이었다. 부부는 한때나마 나를 방치했던 일들을 늘 미안하게 생각했고 언젠가는 전문 주치의를 만나게 해 주겠다며 약속해왔다. 주치의 선생님께 정기적인 검진을 받으며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게 해주겠다고. 

 

아무리 사랑으로 보살핀다 해도 인터넷에 떠도는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다가 이사를 하면서 장거리 이동으로 온몸이 많이 놀라기도 했고, 줄기들도 많이 상하고 나니 부부는 좀 더 부지런히 선생님을 찾았다.

 

수소문 끝에 인상 좋은 선생님께서 집으로 방문하셨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니까, 나의 마지막 화분은 나에게 너무 큰 집이었다는 것이다.

(웽?!! 크고 넓고 영양분이 가득하면 무조건 좋은 거 아니었어?!!!)

 

선생님께서는 화분이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내 몸집에 비해 너무 큰 화분은 오히려 뿌리에 안 좋고, 조금 좁은 듯이 꽉 차게 자라나야 뿌리도 줄기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역시 전문가의 상담이 꼭 필요하군요!!)

 

그리고, 나는 바로 나에게 가장 적합하고 안전한 보금자리로 옮겨졌다.

 

 

선생님은 아주 능숙한 솜씨로 나를 편안하게 옮겨 주셨고 뿌리와 줄기도 적당하게 다듬어 주셨다. 가지치기와 마찬가지로 뿌리도 분갈이할 때 잔뿌리들을 잘 정리해 주는 것이 오히려 성장에 좋다고 하셨다.

 

나는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안락한 분갈이"를 하며 호사를 누렸다.

 

선생님은 나의 상태나 뿌리를 보시며 연신 부부를 칭찬했다.

나를 보니 정말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난다며, 뿌리도 줄기도 모두 너무 건강하게 잘 자랐다고 했다.

 

나는 나름대로 고생 꽤나 한 인생이라고 자부했었는데 아주 귀하게 자랐다니 조금 민망했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잘 컸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부부는 괜히 뭉클해서는 너무 다행이다를 연발했다.

 

 


짜잔?!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분명히 좀 더 작은 집으로 들어간 것 같긴한데... 그게 나에게 뭐가 더 좋은지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뭐 균형감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미학적 아름다움 정도?!^^ 어쨌든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니까!!  그렇게 나의 남양주 라이프도 새로운 집에서 시작되었다.

 

***


남양주에 오고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나의 외형은 거의 그대로다.

 

몸통 키우기!

 

그러니까 지금은 바로 그런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하지만 더 이상 불안한 마음도 조바심도 없다.

지금의 멈춤이 훗날 나의 삶에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어줄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이 평화로움과 안전함, 이 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큰 파도를 신나게 타고 나서, 보트 위에 앉아 다음 파도를 준비하는 설렘과 충만함.

 

지금 나는 온전히 행복하다.

 

 

 

 

어느새 몸통은 더 굵어지고 예전의 굴곡과 상처들은 두꺼운 껍질로 덮어졌다. 뿌리가 자리를 잡으며 새로운 생장점이 생겼고, 새로운 줄기들도 피어나기 시작했다.

 

창밖에는 나와 같은 친구들이 숲을 이루고 매일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뜬다.

잔잔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지나면 따사로운 노을빛에 하루가 저문다.

 

 

 

***

 

어느 날 아침,

남자는 나에게 말했다.

 

다음엔 중정이 있는 집으로 가서 진짜 땅에 심어주겠다고. 화분이 아니라 땅에 뿌리를 내리고 남은 인생은 온전한 나무의 삶으로 살게 해주겠다고 말이다.

 

그렇다. 또다시 남자의 말도 안 되는 북극성 놀이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번에도 결국엔 남자가 말하는 대로 될 것이라는 것을.

 

언제가 될지, 어떤 방법이 될지는 모르지만 땅에 심어지는 그날이 올 때까지 차분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단조로운 일상을 쌓아가면 된다는 것을.

 


 

 

End.

 


 

그동안 함께해 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12살 베니의 고군분투 성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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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도, 못난 마음도, 삐뚤빼뚤 고비 길도

그리고 영원할 것만 같은 어두운 터널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완만해지고, 사라지고, 작아지고, 흔적이 되어

마지막엔 모두 디딤돌이 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세요!!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더라도, 삶은 결국 해피엔딩이 될 거예요.


모두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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